한대의 피아노와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가 있다. 즉흥연주에는 악보가 존재하지 않는다. 피아니스트는 연주자인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하다. 연주는 매 순간의 감각과 지각을 음악적 언어로 전환한다. 따라서 연주자에게는 이론적 지식, 악기에 대한 이해, 숙련된 테크닉, 민첩한 판단력이 요구된다. 연주는 촬영되거나 녹음될 수 있지만, 기록과 재연은 무의미하다. 연주는 다시는 연주되지 않는 단 한번의 연주라는 사실로 인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. 이로써 즉흥연주는 악보가 존재하는 모든 음악의 실재 또한 그것이 연주되는 바로 그 순간에 있음을 보여준다. 같은 연주자에 의해 다시 연주되는 음악조차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며, 기록된 음악은 필연적으로 상실의 운명에 놓인다. 음악을 듣는 동안에, 우리는 그 상실을 함께 듣고 있는 것이다. 이때의 상실이란 기록된 음악에서 누락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. 생생한 연주의 현장은 바로 그 상실의 과정을 목격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.